[업사이클로 살아보는 하루 展] 전시 기획 코멘터리(2)
거실 LIVING ROOM

"업사이클이 시작되는 곳은 자원에 다시 대화를 청해보는 우리들의 상상력이다."
업사이클과 대화하는 응접실
거실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은 ‘응접실’이다. 응접실을 뜻하는 프랑스어 ‘parler’는 본래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하루를 마치고 가족들이 모여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곳이자 손님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말들의 초대 장소. 우리는 거실에서 업사이클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다가가 들여다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이 거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더 이상 입지 않는 의류들을 분쇄해 만든 소파. 폐기된 목재로 만든 테이블과 협탁. 키가 웃자라 더는 입힐 수 없지만 여전히 소중한 옷으로 자녀들이 간직하고 있는 옷들을 가족이 함께 여행했던 세계 지도로 제작한 아트웍.
이 업사이클링 거실을 채우고 있는 소재들의 내력과 소재들의 나이테를 합산한다면 그 시간들은 어떤 깊이를 지닐까? 그 시간들을 모두 합한다면, 그 시간들의 둘레는 얼마나 될까?
불현듯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생긴다. 그 욕구가 소비욕으로 충족되는데 걸리는 최단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단언컨대 ‘빛의 속도’로 결재하는 나, 너, 우리의 모습에서 수많은 소비는 정당화되고, 수없는 우리들의 욕망은 합리화된다.
케임브리지 공대 산하의 산업지속가능성센터 연구원 박규리와 영장류 학자 김산하 부부의 신혼살림이 89퍼센트 중고로 이루어졌다는 글은 필자에게 충격이었다. (출처 : 『아무튼, 딱따구리』 출간 연재, 89퍼센트 중고로 집 꾸미기)
최신 유행 브랜드의 가전을 혼수로 장만하는 것이 신혼부부에게 당연한 소비문화이자 결혼 준비 과정처럼 느껴질 때, 그 당연함은 사실은 누가 권장했는가?
필자의 여동생이 결혼했을 때, 동생 부부에게 영국산 유명 청소기 제품을 선물한 적이 있다. 인기 제품이었고 주는 이 받는 이 모두 흡족했다. 그러나 제품은 출시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구모델이 되었다. 흡입력이 더욱 강력해졌다는 최신 버전이 잇달아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린 시절 썼던 소파를 신혼집에서 다시 쓰는 일. 아내의 동생이 썼던 탁상을 남편이 책상으로 쓰는 일. 고등학교 시절에 아내가 썼던 전등과 시누이가 썼던 화장대와 서랍장을 다시 쓰는 일, 진정한 빈티지인 30년 넘은 블랜더, 재봉틀, 토스터.
정답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 소유보다 사용이 중요한 삶을 신혼살림에 반영한 그들. 그 집의 아내는 이런 문장을 썼다. “서로 다른 기억을 담고 있는 것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 편안한 우리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박규리, 2018)
그들 공간 속 사물들이 갖는 의미망은 단순히 다시 쓰이는 것들이라는 수단성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전기 없이도 사용 가능한 테라코타 냉장고를 직접 만들 생각까지 했다는 아내. 그의 남편은 학자답게 현실적인 실험 가능성을 고려해 말렸다고 한다. 냉장고와 침대 매트리스, 식탁은 새로 구매했으나 “스타일 있는 환경주의자가 되자”는 그들 부부의 모토는 결혼의 진정성 속에서 어우러져 멋지게 지켜진 것이다. 3대가 함께 쓴 물건들의 화합, 물건들도 그들과 함께 결혼한 것이다.
전시의 첫 번째 섹터인 거실은 업사이클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본격적인 장소로 설정되었다.
물리적 화합을 넘어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화합의 장소로써 거실은 ‘업사이클로 살아보는 하루’로 우리를 초대했다.
어떤 사랑의 상상력이 3대가 썼던 옛 물건들을 관계의 새 둥지에서 화합하도록 하였듯이.
거실 주요 전시품 리스트
리싸이클링 우드 수납장과 인더스트리얼 싸이클 테이블, 호메오
업사이클링 우드 대형 테이블, 목수 송요한
빛이 된 폐자전거 소품들 : wheel series knight, 2ndB
Memories : 1인 소파, 황다경(소파가 된 폐옷들, 분쇄 후 한지 원료(닥죽) 기술 혼합)
폐섬유와 폐의류를 활용한 업사이클 세계 지도 키트, 박규옥(지도가 된 버려진 옷들, 폐원단 혼합, 재단 후 바느질)
pumkin, 서동억(호박을 조형한 키 캡, keycap, resin, oil paint)
deer rabbit, 서동억(사슴의 뿔을 가진 토끼가 된 키보드 키캡, keycap, resin, oil paint)
chameleon rhinoceros, 서동억(카멜레온 코뿔소가 된 키캡, keycap, resin, car paint)
빛이 된 기타, 심수진(폐기타 및 드럼 업사이클링)
모던타임즈10, 김영섭(블루투스 오디오 클락이 된 폐시계, 폐자원, 전자기기 혼합 및 채색)
글 : 양수영(경기도 업사이클플라자 개관식 총괄, 경기 업사이클 페스티벌 총괄 기획자)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영상대학에서 공부하고 KAIST에서 미래학으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책연구기관인 ETRI, KRIVET에서 과학 기술, 고용과 노동에 관한 국가 연구 개발 과제들에 참여하며
커리어를 시작하였으며 학생 시절부터 카이스트 신문의 필자이자 미래학회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클러스터혁신팀 주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경기도 업사이클플라자의 신규 사업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미래학 분야에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미래학회 Best Debut Paper>, <김영휴우수논문상> 등을 수상했다.
2017년부터 업사이클플라자 개관 준비 총괄을 담당, 2019년 개관식을 총괄하며 본격적으로 공공 문화 사업 기획을 시작했다.